1992년 출간된 닐 스티븐슨의 공상과학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는 처음으로 메타버스(Metaverse)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메타버스는 현실을 초월한 가상 속 세상을 의미하며, 현재는 네트워크 기반의 가상 현실환경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메타버스는 21년 초부터 거론되기 시작했고, 10월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다만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 관심도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23년 7월 현재는 21년 초와 비슷하게 관심도가 크게 떨어졌다.
메타버스가 단기간에 빠르게 주목을 받은 이유는 넘치는 시장 유동성으로 인해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수요가 몰린 점, 그간 가상현실에서 존재하던 세계관을 메타버스라는 개념으로 구체화했다는 점 등이 있다. 덕분에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하는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또 투자를 받을 수 있었는데, 시장의 흥미가 떨어진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다. 재작년과 비교해 올해의 시장 유동성은 매우 나쁜 편이어서 자금력에 문제가 생겼고,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는 비즈니스 모델부터 나가 떨어지는 상황이다. 즉 시장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지 않는 메타버스 기업은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이 됐다.
침체된 메타버스 시장, 방향성 바꿔야 살아남아
전반적인 메타버스 시장이 침체기를 겪으면서, 비즈니스 모델의 고도화가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는 메타버스 플랫폼 기업 오비스(oVice)가 주목할만한 사례다. 오비스는 누구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연결과 소통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하는 ‘오비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스타트업으로, 현재 한국은 물론 일본, 미국, 베트남, 튀니지까지 다섯 개 언어로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오비스 역시 메타버스 시장의 침체라는 대외적인 어려움을 마주한 상황이지만, 메타버스에 국한되지 않고 업무 보조를 위한 플랫폼, 그리고 고가의 사무실 임대 비용을 대신할 수 있는 가상의 사무실이라는 개념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간략하게 오비스의 서비스를 살펴보면, 반응형 웹 사이트를 기반으로 웹 브라우저 상에 하나의 사무실 공간을 만든다. 실제 사무실처럼 층계와 공간을 이동하고,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직접 찾아서 대화나 채팅을 거는 식이다. 화상 회의나 메시지, 방해금지 등을 설정할 수 있고, 웹 상에서 업무를 진행하기도 한다.
메타버스가 아닌 협업 툴 개념으로 접근하면서 수요층도 달라지고 있다. 오비스를 협업 툴로 도입한 국내의 한 에듀테크 스타트업은 “오비스는 작년 5월부터 업무용으로 도입했다. 당시 원격 근무에 대한 구체적인 운영 방식도 없고, 산업 별로 필요한 협업 툴도 모두 달라 업무가 비효율적이었는데, 한 가지 원격 툴로 이를 모두 지원하자는 뜻에서 오비스를 도입하게 됐다”라면서, “여러 협업 툴을 고려했으나, 실시간 협업에 가장 최적화된 기능들이 갖춰져있어서 오비스를 선택 했다”고 말했다.비용 측면에서도 유의미한 결과가 있다. 해당 기업 관계자는 “올해 회사 인원이 상반기 대비 두 배 늘어 사무실 이전을 고민했다. 하지만 사무실을 이전하지 않고 오비스로 메타버스 사무실을 구축해 원격 근무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사무실 비용을 크게 보전할 수 있었다”라고 답했다. 해당 기업의 경우 오비스를 메타버스 플랫폼이라는 시각을 넘어서 여러 작업 방식을 통합하는 개념의 협업 툴, 그리고 가상 공간도 업무 공간으로 본다는 시각으로 오비스의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다. 메타버스를 넘어선 업무 협업을 위한 장인 셈이다.
소나기처럼 끝난 국내 메타버스, 일본의 접근법은 다르다
일본 메타버스 시장의 분위기는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문화적으로 메타버스라는 개념에 더 친숙하고, 내수 시장도 그만큼 큰 편이어서 전반적인 이해도나 참여도가 훨씬 좋다. 덕분에 메타버스 기업들이 더 빠르게 덩치를 키울 수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21년 이후 관심도가 줄면서 어려움에 빠진 상태다.정세형 오비스 대표는 “일본에서 우리를 포함해 크게 세 개의 메타버스 테마 기업이 있는데, 한 곳은 대외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고, 다른 한 곳은 커뮤니티 서비스로 전환하고 있다. 오비스는 처음부터 메타버스가 아닌 부동산 대안 기업으로 시작해 기틀을 닦은 다음 메타버스 기업으로 성장했다. 메타버스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가상의 부동산을 제공하기 위해 메타버스를 방법으로 사용했을 뿐, 그 자체를 사업의 주축으로 설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일본 기업들은 오비스의 서비스를 가상현실보다는 공간 대여, 즉 부동산의 대체 수단 측면에서 보고 있다. 일본의 전자상거래 기업 엔재팬(enJAPAN)은 2020년 전사적으로 오비스를 도입했으며, 브레인스토밍이나 화상 회의, 화면 공유 같은 원격 근무는 물론 사내 교류회와 직원 조례, 직원 연수, 직무 간담회, 온라인 송년회 같은 모임까지도 오비스로 이용하고 있다.특히나 일반 원격 근무에는 없는 오비스만의 솔루션으로 차별화를 두고 있다. 예를 들어 가상공간 내에 유튜브를 틀어 배경음악을 구성한다거나, 시기에 맞는 사물을 배치해 분위기를 낼 수 있다. 또한 텍스트나 화상회의를 매번 여는 대신 직접 가상공간 내 자리로 찾아가 음성 대화나 잡담을 하고, 상대방이 실제로 접속해 있는 상황을 보면서 팀 회의를 즉석에서 진행한다거나 동기 부여를 하는 등으로 응용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약 300명 규모의 소비자 간담회를 오비스 이벤트로 개최한 사례도 있다.
가상에 매몰되지 않고, 공간에 초점 맞춰야
엔재팬의 가상 오피스 사례를 보면 메타버스 기업들이 추구해야 할 방향을 엿볼 수 있다. 단순히 가상현실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제공할 가치를 설정하고 실질적 이득을 제시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정세형 대표는 “오비스를 포함한 다양한 서비스들은 외부 환경에 많이 의존하므로 로드맵은 의미가 없다. 오비스는 사무실에 반드시 출근해야한다는 관점에 대한 사회적 인식,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경험 및 시스템 연동, 시스템을 통한 가치 있는 데이터 창출을 당면한 과제로 삼고,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기업, 기관들은 메타버스를 단순히 유행하기 때문에 접근했다. 일회성 이벤트에 그친다거나, 디지털 전환의 일환으로 잠깐 도입하고 말았다. 이 흐름에 편승한 메타버스 기업들 역시 금방 사그라들었다. 오비스는 정세형 대표 말대로 메타버스를 하나의 수단으로만 활용했을 뿐, 처음부터 가상 부동산을 제공한다는 방식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오비스는 가상 오피스를 통해 실제 사무실에서는 환산하기 어려운 업무 데이터를 디지털로 구축하고, 가상 오피스로 절감한 임대 비용은 연구 개발이나 인건비, 인프라 투자 등 더 필요한 분야에 투입함으로써 사업 모델의 매력 요소를 만들었다. 앞으로의 메타버스 기업들은 오비스처럼 가치있는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어야 살아남을 것이다.
(출처: https://www.donga.com/news/It/article/all/20230811/120671039/1)